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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볶는 마을
[브루잉의 세계] 버큠포트(사이폰)

중력을 거슬러 오르는 커피

앞서 2차례에 걸쳐 핸드드립에 대해 알아봤고, 이번호부터 다양한 추출기구를 이용한 추출법을 소개합니다. ‘사이폰’으로 잘 알려진 버큠포트부터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버큠포트(Vacuum Pot)는 1840년 스코틀랜드의 해양학자인 로버트 네이피어(Robert Napier)가 진공 여과식 용기(Vacuum-filled container)를 개발한 것에서 유래한다. 1842년 프랑스의 마담 배쉬(Madame Vassieux)가 상하 플라스크를 연결한 현재의 형태를 구상했고, 이를 바탕으로 1924년 일본의 고노 아키가 ‘사이폰(Syphon)’이란 명칭으로 대량 생산했다. 버큠포트보다 사이폰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배경이다.

버큠포트 커피는 끓는 물로 성분이 추출돼 휘발성 향기들이 풍부하다. 추출과정이 투명하게 보여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버큠포트는 압력의 차이로 작동한다. 하부플라스크에 있는 물이 가열되면 수증기로 변하고, 수증기가 밀폐된 플라스크 속의 물에 압력을 가한다. 뜨거워진 물은 압력을 받아 로드(상하부 연결관)를 통해 서서히 위로 올라간다. 상부플라스크에서 커피가루가 물을 만나 추출이 일어난다.

적절한 시간 뒤 열원을 제거하면 수증기의 압력이 사라지면서 커피성분을 추출한 액체가 로드를 따라 다시 아래로 내려온다. 이때 수증기가 사라진 하부 플라스크에는 진공이 풀리면서 물을 보다 빠르게 아래로 떨어뜨리는 압력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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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출공식
커피가루 : 물 = 1 : 12(10g : 120㎖)
추출시간 = 40~60초
커피가루 굵기 = 중간(약 0.6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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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에서 시계방향으로)

① 하부플라스크에 따뜻한 물을 담는다.

② 램프에 불을 붙여 하부플라스크를 가열한다.

③ 로드(상하부 연결 관)에 필터를 장착한다.

④ 물이 끓는 듯하면 로드를 하부플라스크에 연결한다.

⑤ 상부플라스크로 물이 올라가면 커피가루를 넣어 추출을 시작한다. (대체로 1분 이내)

⑥ 스틱으로 커피가루를 저어 고르게 물과 접하도록 한다.

⑦ 열원을 제거한다.

⑧ 추출액이 하부플라스크로 내려갈 때 스틱으로 저어 벽면에 찌꺼기가 붙지 않도록 한다.

추출결과 평가

버큠포트 추출이 잘 진행됐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가 ‘거품의 상태’이다. 거품은 휘발성 향미와 이산화탄소가 물과 만나면서 생성된다. 로드로 솟구친 물이 커피가루와 섞이고 계속 가열이 진행되면서 각종 가스가 액체의 표면으로 올라간다. 향기 성분은 대부분 이산화탄소에 결합되어 날아가므로, 거품이 적을수록 향도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커피가 어느 정도 볶인 것인지와 커피를 볶은 지 얼마나 지났느냐, 그리고 커피의 품종이 무엇이냐에 따라 거품의 생성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추출이 끝난 뒤 필터에 남은 커피가루의 모양을 보고 추출과정을 평가할 수도 있다. 벽면에 가루가 붙어 있지 않을수록, 쌓인 커피가루가 돔형으로 매번 일정한 모양을 이룰수록 추출의 일관성이 양호한 것이다.

추출응용

물이 끓어 로드로 올라갈 때 온도는 섭씨 95도 정도이다. 상부플라스크에 담기는 커피가루를 만날 때 물의 온도는 섭씨 90도 정도가 된다. 가볍게 볶은 원두를 사용할 때는 신맛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므로, 물의 온도를 높이면 쓴맛을 좀 더 이끌어 낼 수 있다. 반대로 진하게 볶인 원두를 추출할 때는 물의 온도가 높아지면 쓴맛이 더욱 강조되므로 맛의 균형을 고려해 물의 온도를 조절해야 한다.

끓는 물이 로드를 통해 상부플라스크로 올라가 커피가루를 적실 때 찬물을 추가해 물의 온도를 낮추면 추출력을 낮춰 진한 맛을 줄일 수 있다. 하부플라스크의 물이 끓기 전에 로드를 플라스크에 연결해 물의 온도가 더 높아지기 전에 추출을 시작하는 것도 맛에 변화를 주는 방법이다. 물이 끓기 전에 로드를 연결하면 물이 올라가는 속도가 느리다. 이 때는 분쇄도를 상대적으로 굵게 하는데, 산미가 더 두드러지는 효과를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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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틱으로 젓는 이유?

커피 원두를 그라인더로 분쇄하면 통상 30% 가량만 크기가 같고 나머지는 크거나 작다. 상부플라스크에서 물과 섞인 커피 가루는 부력으로 인해 위로 갈수록 크다. 아래로 갈수록 입자의 크기가 작다. 특히 미분이 많으면 필터를 막아 추출 속도가 더욱 느려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커피가루와 물이 만나는 시간이 기준보다 늘어지면서 떫은맛과 잡미가 두드러진다. 따라서 커피 성분이 골고루 추출되도록 스틱으로 3~4차례(매번 횟수를 일정하게) 젓는다. 커피 가루가 물과 고르게 섞이도록 젓는 동작으로 인해 커피 가루의 찌꺼기는 원운동을 통해 돔형을 이루게 된다.
 

작은 쇠구슬의 역할은?

쇠구슬이 없으면 하부플라스크의 끓는 물이 폭발하듯 로드 위로 올라가 커피가루와 격렬하게 섞이게 된다. 로드와 여과기를 고정하기 위해 사용한 속이 빈 쇠구슬 줄(넥타이핀에서 아이디어를 얻음)을 끓는 물에 길게 늘어뜨려 놓으면, 가열 시 속이 빈 쇠구슬 속에서 기포가 서서히 발생하기 때문에 폭발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제공 및 출처 | 커피비평가협회(www.ccacoffee.co.kr), 《이유있는 바리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