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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쉼표
[인간극장] ‘촌집 고쳐주기’ 프로젝트

오픈하우스 날, 어머니의 통곡

한 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아이템 잡기’는 마치 가난한 집 제사 같다. 바듯이 준비해 열심히 제사 지내고 돌아서면 다시 제사 준비를 해야 하는 없는 집 살림 같다. 그래서 평소에도 늘 아이템 낚시 준비를 하고 살아야한다. 누군가 육포를 개발했다고 하면, 육포로 할 수 있는 아이템을 생각하고, 동백기름 잘 하는 집을 알아뒀다고 하면 우리 선조들은 어떤 기름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기름 공부를 틈틈이 해둔다. 그렇게 구하는 아이템이야말로 새로운 무엇이 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오래 벼르던 아이템이 집 짓는 사람들을 취재하는 거였다.

《월든》을 쓴 작가 데이비드 소로우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의 숲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그리고 말했다. “언제까지 집 짓는 즐거움을 목수에게만 넘겨줄 것인가?”라고. 요즘 농촌을 지나다보면, 귀농자들이 지은 특별한 집들이 많아져 눈여겨 봐왔다. 그리고 이름 하여 ‘내 집 내 밥’을 기획했다. 내 손으로 지은 집에서 내 손으로 지은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 이야기! 집은 그 사람의 철학을 담는 그릇이니, 특별한 철학이 있는 사람들의 사는 집, 또 그들의 밥상 위에는 어떤 음식이 올라올지 궁금했다. 오늘은 ‘내 집 내 밥’을 취재하다 만난 모자(母子)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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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화분 할머니와 막내아들

서산 할매의 살림살이

“작가님, 제가 취재했던 할머니인데요, 할머니 캐릭터가 좋아요. 나중에 한 번 해도 괜찮을 거 같아요.” 늘 아이템 찾는 전쟁 치르는 걸 잘 아는 AD가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겨서 제보를 해줬다. 그 친구가 하는 프로그램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동영상의 주인공을 만나는 거였고, 막둥이 아들이 문을 고친 후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하는 짧은 동영상이었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대문이 근사한 나무 대문으로 바뀐 걸 보고 의아해하는 어머니 앞으로 아들이 숨어있다 나타나자, 어머니는 놀라면서 아들에게 시원하게 욕을 날리셨다. 짧은 동영상이었지만, 할머니 캐릭터가 꽤 매력적이었다. 이후로 그 아들이 어머니가 사시던 촌집을 잘 고쳐주었다니, ‘내 집 내 밥’에 딱이었다.

우리는 곧바로 서산으로 향했다. 산골 외딴집이었다. 파란색 지붕의 최화분 할머니의 집이 단정했다. 어느 집이나 그렇겠지만 어르신들의 시골집은 들어서면 그분의 성미를 금방 알 수 있다. 대부분 촌집 할매의 살림살이는 ‘널어놓기’ 십상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도 꼬질꼬질해 보이기 쉬운데, 최화분 할머니의 살림은 정갈했다. 부엌도 침실도 깔끔했다. 잘 고쳐진 집에 정갈한 살림살이, 우선 합격이었다.

손님 온다고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고구마를 한 가득 쪄두셨다. 직접 농사지은 고구마가 달았다. 맛있다고 야단하니, 할머니는 꼬질꼬질한 냄비에 쪄서 안 먹으면 어쩌나 걱정했단다. 그것만 봐도 얼마나 깔끔한 성격인 줄 알 수 있었다. 그런 성격 때문이었을까? 할머니는 올 봄 위암 판정을 받았단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되어 항암치료는 안 받았다고 한다. 위암 치료를 받게 되면서 막둥이 아들 조덕상 씨는 정신이 번쩍 났다. 언제까지나 곁에 있을 줄 알았던 어머니의 삶이 유한하다는 그 자명한 진실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그렇게 ‘막둥이의 어머니 집 고쳐주기’ 프로젝트에 들어갔단다.

‘어머니도 좋아하시는구나’

우선 어머니는 공사하는 동안, 아들 집에서 묵었다. 암 수술 후 요양 겸 아들은 서산 시내의 아파트에서 편안히 모시기로 했다. 어머니는 매일 화를 내셨다. 얼마나 산다고 쓸 데 없이 자식이 돈을 쓰는 것이 내내 못마땅해서였다. 아들은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머니가 하도 화를 내니 괜한 짓을 했나 후회도 여러 번 했다. 보름쯤 공사가 끝나고 드디어 오픈 하우스 날, 아들은 어머니가 계속 화를 내실까 걱정을 하면서 어머니를 집에 모셨다.

그런데 반전이었다. 집에 들어선 어머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왜 우시냐고 하니까, 어머니는 아들을 붙들고 ‘너무 좋아서 운다’고 하셨다. 그때 아들은 자신이 얼마나 불효자인지 알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어머니도 내가 좋아하는 걸 다 좋아하시는구나!’ 라고. 몰랐다. ‘어머니도 나처럼 예쁜 옷이 좋고, 깔끔한 집이 좋고, 폼 나는 차가 좋구나!’

그 얘기를 듣는데, 울컥 나도 눈물이 쏟아졌다. 함께 사는 팔십 넘은 엄마가 생각나서였다. 같이 갔던 젊은 후배들에겐 그저 주책없는 선배 같았겠지만, 하루하루 노모가 늙어가는 게 보이는, 함께 즐길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걸 새록새록 느끼는 중년의 감성으로는 그 아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40대에 깨닫고 어머니를 위해 애를 쓰는 막둥이가 참으로 기특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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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보일러

그런데 공사를 하며 아들도 통곡을 한 적이 있다. 어머니의 촌집은 늘 을씨년스러웠다. 이건 필시 보일러가 잘 작동이 되지 않는 탓이다 생각하고는 보일러부터 손보기로 했다. 보일러를 뜯어내기 전 작동을 해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보일러는 아무 문제없이 잘도 돌아갔다. 방바닥은 설설 끓었다. 그 더운 방안에 앉아 막둥이 아들은 한참을 울었다. 돈 아끼려고 보일러를 안 트셨던 것도 몰랐던 자식의 무심함이 원망스러워서였다. 그 후, 집을 고칠 때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며 하나하나 손 봤다. 그래서 탄생한 곳이 헛간을 헐고 만든, 집안에 있는 어머니의 쉼터다.

헛간을 부수고, 그 자리에 너른 평상을 제작했다. 마당에 앉아 마을 논밭 구경도 할 수 있고, 동네 할매들이 오면 같이 푸지게 수다도 떨 수 있는 공간이다. 이번 가을엔 거기에 뜨끈한 장판까지 깔았다. 최화분 할머니는 흥이 나, 유행가 가락을 시원하게 한 곡조 뽑기까지 했다. ‘서산 귀요미’ 모자를 보면서, 기회가 된다면 어머니의 촌집을 고쳐주는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렇게 촌집을 고치고 나니, 여섯 남매가 예전보다 훨씬 많이 어머니의 집에 머문다고 한다. 집이 옹색해 자고 가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보름씩, 한 달 씩 엄마 곁에 장기 체류를 하고 돌아가는 자식도 있다고 한다.

혹시 촌집에 어머니가 사는 아들딸이 있다면, 명심하시라! 어머니는 고등어 대가리를 좋아하는 게 아니란 걸. ‘아니다. 필요 없다.’ 손사래를 치는 건 진심이 아니란 걸.
 

너무 늦지 않게 어머니의 촌집을 들여다보길 권한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하지만 요즘 세상은 치사랑을 북돋울 때가 아닌가 싶다.

글 | 한지원
한지원 님은 1990년부터 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간극장> <KBS 스페셜> <그것이 알고 싶다> <VJ 특공대> <명작 스캔들> <TV 책을 보다> <EBS 다큐시선> 등 주로 교양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를 집필했습니다. 현재 KBS <한국인의 밥상>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