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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쉼표
[수리수리 정가이버] 수련이 피는 작은 연못을 만들다

물소리, 새소리…기대 이상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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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뒷마당에 작은 연못을 만들었다. 연못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실상은 좀 큼지막한 ‘고무 다라이’를 사다 땅에 묻고 바닥에 흙을 깔아 수초를 심고 물고기를 몇 마리 풀어 놓은 게 전부였다. 처음엔 제대로 된 연못을 갖고 싶었지만 알아보니 연못을 만드는 일이 생각보다 비용도 많이 들고 욕심 따라서 너무 크게 만들어 놓으면 언젠가 철거를 하고 싶을 때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고무 다라이를 이용하는 것이었는데 말은 대야지만 폭이 130cm 정도나 되고 깊이가 50cm에 이르러 수련과 창포를 심고 둘레를 예쁜 돌로 장식을 해 놓으니 제법 근사한 공간이 되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연못가에 놓아 둔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시작하는 하루가 선물처럼 주어졌다. 수련이 순결한 빛깔의 고운 꽃을 피울 때면 아름다움에 취해 곁을 떠나기가 쉽지 않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도록 땀 흘리며 삽질을 하는 수고를 해야 했지만 불과 몇 만원을 들여서 작은 연못을 갖게 돼 기쁨은 기대 이상이었다. 

태양 에너지로 작동하는 작은 폭포

작년에는 연못을 조금 더 업그레이드 했다. 물고기들을 위해 작은 폭포를 새로 만든 것이다. 폭포라고 해봐야 소형 수중 모터를 이용해서 높이가 20cm 정도 되는 곳에서 물이 떨어지도록 한 것뿐이다. 연못에 식물만 심어 놓으면 여름에는 모기가 알을 낳는 곳이 되기 때문에 모기의 애벌레인 장구벌레를 잡아먹을 물고기를 꼭 키워야 한다. 새로 만들어준 작은 폭포는 물고기들에게 산소를 공급해 주고 또르르 떨어지는 물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참 편안해진다. 하지만 폭포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기가 필요했는데 겨우 작은 모터 하나 동작시키려고 집안에서부터 전기를 끌어 오면 실외 환경에서 자칫 전선이 상해서 누전의 위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소형 태양광 패널을 이용해서 전기를 공급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수중 모터들은 가정에서 사용하는 220볼트 교류전기를 사용하는 제품이지만 태양광 패널에서 공급되는 직류 전기를 이용해서 동작시킬 수 있는 제품을 찾아냈다. 그렇게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서 만들어 낸 친환경 전기를 사용하니 전기요금 걱정도 없고 해가 떠 있을 때만 동작해서 밤에 생기는 소음 문제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공들여 만든 연못을 커다란 세숫대야라고 놀리는 친구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마당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되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연못에는 노란 창포 꽃이 피고 여름이 되어 수련이 필 때면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른다. 그리고 물고기는 송사리와 버들붕어를 넣었는데 자연에서도 고여 있는 물을 좋아하는 종류들이다. 

새로 생긴 물고기와 ‘새’ 친구들

송사리는 길이가 겨우 4센티미터 정도의 아주 작은 물고기인데 독특한 방식으로 번식한다. 3개월 정도만 자라도 번식을 할 수 있는데 다른 물고기처럼 알을 낳아 수정만 시켜 놓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암컷이 4~5개의 알을 포도송이처럼 배에 달고 다니다가 수초에 붙여 생존가능성을 높인다. 알의 숫자는 적지만 알을 천적에게 빼앗기지 않을 수 있는 아주 영리한 방법이다. 이름이 예쁜 ‘버들붕어’도 다 커 봐야 몸길이가 5~6센티미터 정도인 작은 물고기인데 녀석들의 번식 방법은 더 재미있다. 수초가 가득한 곳의 수면에다 집을 짓는데 특이하게도 입에서 나온 끈적끈적한 액체로 만든 공기 방울을 재료로 삼는다. 

수컷이 부지런히 거품을 만들어서 ‘거품집’을 완성한 뒤 화려한 색과 무늬로 장식한 지느러미를 활짝 펴고 춤을 추면 암컷이 집 안으로 들어와 알을 낳는다. 그런데 수컷은 기껏 알을 낳아 준 고마운 암컷을 멀리 쫓아내고 새끼들이 태어날 때까지 혼자서 알을 지킨다. 우리 토종 물고기들이지만 안타깝게도 자연에서는 만나기 쉽지 않은 물고기들이 되어 버렸다. 연못을 만들어 놓으니 찾아오는 손님들이 생겼다. 예쁜 연꽃이 필 때면 꽃을 보기 위해서 동네 아주머니들이나 친구들이 구경을 오기도 하지만 고맙게도 새들이 참 많이 찾아와 준다. 참새와 까치부터 직박구리, 비둘기 그리고 박새 같은 산새들도 찾아온다. 새들은 연못의 물을 먹기도 하지만 목욕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물을 먹는 건지 마시는 물에서 목욕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연못에 풍덩 빠져서 어린아이가 물장구를 치듯이 물을 사방  팔방으로 튀기며 힘차게 날개 짓을 하는 목욕을 한다. 그리고는 높은 나뭇가지에 올라가 목욕을 하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정성스레 깃털을 말리고 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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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속의 오아시스’가 주는 행복

가끔은 운 좋게도 그런 모습을 직접 목격하기도 하지만 주변에 온통 물이 튄 자국이 있으면 금방 누가 목욕을 하고 갔다는 걸 알 수 있다. 잘 날아야 먹이를 구할 수 있고 또 천적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 테니 정성을 들여 깃털을 다듬는 것은 새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과인 것 같다. 오히려 그런 새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지런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그리고 또 중요한 단골손님이 있는데 바로 길고양이들이다. 길고양이들은 번식기가 되면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서 듣기 싫지만 생각해 보면 키우던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아이들이기도 하다.

그런 길고양이들은 먹이를 구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깨끗한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해서 오염된 물을 먹고 병에 걸려 고통을 겪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처음에는 새들이 고양이에게 잡혀 먹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새들은 용케도 고양이를 잘 피해서 연못을 이용했고 고양이들은 얌전히 물만 먹고 갈 뿐 다행히도 새들처럼 풍덩 빠져서 목욕을 하진 않았다. 그리고 연못에선 수초와 물고기가 조화를 이뤄서 공생하며 자정작용이 일어나니 가끔 줄어든 물만 보충해 줘도 투명하고 맑은 물이 유지되었다. 그래서 연못은 새들과 길고양이, 그리고 나에게도 도시 속의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 되어주고 있다. 싸구려 고무다라이로 만든 간이 연못이지만 누구에게나 내 새끼가 제일 예뻐 보이는 것처럼 곁에 두고 매일 볼 수 있는 연못이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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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한섭 (bearfeet@naver.com)
1994년부터 통신과 방송 관련 장비를 개발하는 전자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재택근무를 하며 아빠로서 두 아이의 육아를 담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요즘은 아이들에게 수학과 코딩을 가르치는 일을 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