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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쉼표
[탱자 가라사대] 혼자 살면 무슨 재민겨?

‘혼밥혼술’이 가져 올 나비효과

‘혼밥혼술’이 대세다. 1인 가구가 늘어나다 보니 당연한 결과처럼 보인다. 근데 나 역시 대학졸업 후 쭉 혼자 살았지만 혼밥은 할지언정 혼술은 좀처럼 해본 기억이 없다. 1인 가구 증가라는 단순 인구학적 원인보다 대놓고 말하긴 불편한 복잡한 심리적, 정서적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일단 가벼워진 주머니 사정 때문일 거다. 사람들과 어울리면 돈이 많이 들다 보니 제한된 자원을 나만을 위해 온전히 쓰고 싶다. 게다가 타인과의 직접적인 대면이나 교류 없이도 스마트폰, SNS를 통해 소통이 가능하고 유튜브, 넷플릭스 등 즐길 콘텐츠들이 넘쳐나니 혼자 있어도 덜 외롭고 안 심심하다. 이렇게 혼자 먹고, 마시고, 노는데 익숙해지다 보니 누군가와 함께하는 게 점점 불편해진다. 혼자니까 남 눈치 볼 거 없이 내 맘대로 모든 걸 결정하고 통제 가능하다. 자유롭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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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 민족’에 합류할 수 없는 제주 ‘싱글’

그나마 대도시의 혼족들은 혼밥혼술의 장점을 제대로 누릴 수 있다. 일단 편리한 배달앱으로 다양한 혼밥혼술 메뉴를 탐닉할 수 있다. 탐나는 씨티라이프다. 탐라국 구석에 살고 있단 이유로 난 ‘배달의 민족’ 대열에 합류할 수 없다. 그나마 옆 동네와 달리 이곳 세화리에선 중국음식과 치킨정도는 배달이 가능하단 걸로 위안을 삼는다.

제주에 오기 전 직장인일 땐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 술자리를 가졌다. 주로 아는 여성과 단 둘이거나 남녀가 섞여 네댓 명이 모여 함께 마셨다. 즐거운 분위기에 2차 이상으로 술자리가 이어지다 보니 음주량은 꽤 많은 편이었다. 제주에 와선 폭음을 하는 일은 없지만 반주 한 잔 정도의 술을 매일 마신다. 혼밥과 혼술이 동시에 진행된다.

독립은 원하지만 고립은 원하지 않는 대도시 혼족들은 요즘 뜨는 독서모임인 ‘트레바리’ 같은 커뮤니티나 미팅앱 등을 통해 취미활동과 자유로운 연애라이프를 ‘일타쌍피’로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귀양살이와 진배없는 제주이주 혼족은 이성과의 대면자체가 쉽지 않다. 고립감을 타파해 보려 난생 처음 ‘틴더(Tinder; 위치기반 글로벌 매칭앱)’를 깔아봤다. 나이 값도 못하는 사람으로 보일까봐 1만여 원을 투자해 나이숨기기 기능을 추가했다. 마지막으로 근처에 있는 이성 색출 반경을 미터가 아닌 최대치 100마일로 설정하고 조마조마 결과를 기다렸다. 오마이갓, 전라도에 사시는 여성 몇 분과 후쿠오카 거주로 추정되는 일본여성 한 분이 뜬다. 이래저래 제주는 혼족으로 살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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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

혼밥혼술이 일상화 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혼자 먹고 혼자 놀다 보면 누군가와 함께 어울리는 스킬이 줄어든다. 서툰 인간관계로 인해 문제를 맞닥뜨리고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경험이 적어진다. 어떤 식으로 대화를 해야 하고 소통을 해야 할지 점점 잘 모르겠다. 지인이 먼저 연락해 만나자 하면 반갑고 고마운데, 내가 먼저 연락하고 다가가긴 생각만큼 잘 안 된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일말의 불안과 부담감도 갖는 게 싫어 혼자만의 라이프를 고집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영화 <더 랍스터>, 싱글지옥 황당 스토리

<더 랍스터>란 영화가 있다. 오직 커플만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가까운 미래, 싱글이 된 사람들은 수용소 같은 곳에 강제로 보내지고 100일 안에 그 곳에서 커플이 되지 않을 경우 처음 입소 시 지정했던 동물로 변해 인간세상에서 영원이 격리된다는 황당한 스토리의 영화다.

연애도 결국 관계맺기이다. 이성과 어설프게 사귈 바엔 차라리 혼자만의 편안하고 안락한 시간을 갖고 싶다던가, 이별할 때의 불편한 대화와 감정이 싫어 관계맺기 자체를 사전에 차단하는 행태가 고착되고 있다. 싱글인구는 늘지만 연애자체를 기피하고, 급기야 무성생식에 가까운 ‘무섹’이 보편화 된다면 인류는 멸망할지도 모른다. 곧 다가 올 인류의 위기를 직감해 국가차원에서 싱글상태를 법적으로 금지함으로써 ‘커플천국 싱글지옥’이란 주제를 기묘하게 다룬 이 영화가 결코 판타지 영화로만 보이진 않는다.

이 모든 사달이 혼밥혼술의 작은 날개 짓에서 시작한 나비효과라면? 너무 나간 상상일 테지만 소통과 관계가 붕괴되는데 혼밥혼술 트렌드가 일말의 기여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결혼을 기피하고 인구가 줄어들어 노인천국이 될 대한민국의 미래가 걱정된다면 정말로 혼밥과 혼술을 멀리해야 할지 모른다.

따라서 정부와 지자체는 작금의 ‘혼류 문화’에 위기의식을 갖고 혼신을 다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구체적인 아이디어로 혼밥과 혼술을 하는 사람들을 실시간에 연결해 주는 앱개발, 식당이나 술집에서 혼족 합석 시 가격할인, 혼족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먹고 마실 수 있는 쉐어아지트 제공, 지역 싱글 DB를 활용한 지자체의 AI 매칭서비스 제공, 결혼 및 육아수당 증액 등이 떠오른다. 연령상한은 두지 말기로 하자. 혼류, 싱글은 30, 40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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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랍스터> 포스터
글 | 지준호
지준호 님은 전직 광고맨(오리콤, 제일기획 등)으로 일하다 8년 전 제주이주민이 되었습니다. 구좌 세화리 부티크 제주민박 <살롱드탱자>와 유쾌한 제주돌집 <탱자싸롱>을 운영 중입니다. ‘바삭한 주노씨’란 작가명으로 브런치(httP://brunch.co.kr/@junoji)에 재치 있는 에세이와 패러디 광고를 연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