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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카페 2020.10 | Vol.11
월간 카페人  /  제10호  /  지상의 쉼표
지상의 쉼표
[인간극장] 암 환자 가족이 된다는 것

‘셀프 싸대기’ 날리던 나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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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과 드라마 이야길 하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몇 년 전, 중년의 남자 친구들도 다 보는 드라마가 있었다. 기라성 같은 원로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인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드(2016)>. 노년의 삶을 리얼하게 그린 드라마였다.

‘난 오직 내 걱정뿐이었다.’

극중 인물 ‘장난희(고두심)’는 지지리 고생을 한 억척 어멈이다. 그 장대한, 지지리 궁상의 역사는 지금도 끝나지 않아서 봉양해야할 노부모와 장애인 동생, 거기에 아직 결혼하지 않은 딸까지 주렁주렁이다. 그런데 암이란 암초가 또 그 앞에 나타난 것이다. 난희는 암 선고를 받고 어렵게 딸에게 털어 놓는다. 

딸은 생각보다 무덤덤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아무 일도 없는 듯이 둘은 여행을 간다. 그리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너스레도 떨면서 가급적이면 자신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그러던 딸이 화장실로 들어가서는 자신의 뺨을 사정없이 때리고 또 때린다. 그리고 그의 독백이 내레이션으로 깔린다. 
‘엄마의 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분명히 나의 이기심을 보았다. 암 걸린 엄마 걱정은 나중이고, 나는 이제 어떻게 사나 그리고 연하는 어쩌나…. 난 오직 내 걱정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에서 공감을 하고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문득 암 환자 가족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 역시 그 흔한 암 환자 가족이었다. 암 환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암 환자 가족 노릇도 참 고약하다. 선고를 받았을 때, 천벌을 받은 것 같은 감정과 투병을 하는 내내 함께 겪어야 하는 괴로움, 세상을 떠났을 때의 죄책감 모두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개인사다. 오죽했으면 너도 나도 암 환자고 너나없이 암 환자 가족인 암 병동에 있을 때, 가장 마음이 편할 정도였으니까.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 또 다른 암 환자를 만난다는 것, 그 또한 고역이다. 딱지가 아물려고 하는 상처를 다시 헤집어 놓는 일이어서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다. 그러나 부친상을 당하고도 웃음을 팔아야 하는 개그맨처럼 어쩔 수 없이, 피할 수 없이, 방송 작가도 그런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인간극장의 작가를 하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그만큼 암 투병은 우리네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결혼 1년 새색시에 붙여진 ‘또 다른 이름’

내가 처음 현주 씨를 처음 만나 건, 스물일곱 현주 씨가 막 ‘암 환자 가족’이 되었을 때였다. 결혼한 지 1년 된 새색시에게 달갑지 않은 또 다른 이름이 붙은 것이다. 현주 씨의 남편 정래  씨는 키 185센티미터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자동차 동호회에서 만난 두 사람은 결혼을 해 아들 용민이를 낳았다. 아직 백일도 안 된 갓난아이를 친정 엄마에게 맡기고 둘 다 병원 생활을 시작했다. 

어렵게 촬영을 허락한 정래 씨는 간암 말기였다. 그는 도로 정비 일을 하고 있었는데, 평소 그를 힘들게 했던 소화불량을 치료하기 위해 들른 병원에서 청천벽력과 같은 선고를 받았다. 젊다는 건 암 환자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세포활동이 왕성한 만큼, 암세포 활동도 왕성하기 때문이다. 정래 씨의 경우엔 이미 암이 많이 진행되어 수술도 불가능한 상황, 간 이식만이 살 길인데 그것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우선 입원해 복수를 빼는 등의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런 그가 촬영을 허락한 건, 나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아들에게 아빠의 모습을 남겨두고 싶어서였다. 

촬영 기간 3주, 병원에 입원하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타이밍부터 촬영에 들어갔다. ‘6개월을 넘기기 어렵다’는 의사 선생님의 사형선고가 떨어진 날, 현주 씨는 후미진 병원 계단에 숨어 목 놓아 울었다. 어찌나 안타까운지, 카메라도 차마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리서 우는 모습을 엿봤다. 아이 돌보랴 돈 벌랴, 병원 생활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남편에게 슬픈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았다. 워낙도 낙천적이고 애교 많은 성격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그런 모습이 남편에게 악영향을 미칠까 걱정이 돼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는 속 깊은 여자였다. 착한 남편 역시 내색을 잘 하지 않았다. 아픔을 가린 두 사람의 악전고투는 지켜보는 제작진을 더 아프게 했다. 

촬영 내내 작가가 붙어 있을 수가 없어 현장에 나가있는 피디와 사무실에 있는 작가는 늘 전화통화를 통해 취재 방향을 의논한다. 어느 날 피디가 전화를 했다. 갑갑하다는 것이다. 처음 암 선고를 받은 후, 두 사람 모두 감정의 진척에 없다는 것이다. 휴먼 다큐멘터리는 현실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지만, 그것 역시 극적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감정의 고저가 교차되어야 5부작을 끌고 갈 수 있는데, 감정의 기복이 없는 나날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주 씨가 처음 같지 않다는 것이다. 마음의 정리를 하고 앞으로 살 걱정을 하는 사람 같다고 현장에서 피디가 투덜거린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생각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 같았다. 환자에게는 야속한 말 같지만 아이도 있는데, 어찌 슬픔 속에만 빠져있겠는가? 어떻게든 하루하루 살아내야 하고 어떻게든 앞으로의 살 길을 찾는 게 맞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현실이지만, 방송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좀 더 슬픔을 끌어안고 있었으면 하고, 세상에 없는 지극한 순애보의 주인공이 되어 주길 바란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만약 내가 암으로 가족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나도 그런 바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해가 갔다. 내가 그랬으므로….

그래서 아픔을 가리고 언제나 밝게 지내는 현주 씨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말이 많지 않지만 아들을 향한 애틋한 정래 씨의 아버지 마음에 포커스를 맞추기로 했다. 결국 방송의 하이라이트는 아무 일도 없는 듯, 두 사람이 애써서 아들의 백일잔치를 준비하고 가까운 친지들을 모시고 파티를 여는 것으로 감동을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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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일곱 현주 씨가 준 선물

취재를 하고 방송을 하는 내내 내 마음은 무거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 편으로는 방송을 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나를 용서했다. ‘염치가 없어 울지도 못하는’ 암 환자 가족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벗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암 환자의 무거운 짐을 함께 지고 있던 스물일곱 현주 씨를 보면서, 오직 슬픔만으로 간병의 시간을 채우지 못하는 현실을 바라보며, ‘내 스스로에게 따귀를 날리던’ 나를 위로했다. 
‘괜찮아. 너는 그 때 겨우 서른셋이었어. 그런 아픔을 감당하기에 너는 너무 어렸고 현실은 가혹했어. 그만큼이라도 해낸 네가 기특해.’ 처음으로 나에게 관대해지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스물일곱 나이에 백일 된 갓난아이를 가진 새색시 현주씨가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이 방송이 본의 아니게 나에게는 ‘사심 방송’이 되고 말았다. 제작진은 많은 사람에게 방송을 통해 위로와 기쁨을 주길 원한다. 그러나 더러는 이렇게 출연자가 제작진에게 힘을 주고 진통제를 주기도 한다. 이런 경험이 힘들다 투덜대면서도 방송을 그만두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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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통이라는 작가의 <아만자>라는 웹툰을 봤다. 청년 암 환자가 투병하는 내용이다. 너무 리얼해서, 김보통이란 작가가 암 환자라는 소문까지 떠돌았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본인이 아니라 작가 아버지가 암 투병을 하다가 하늘나라로 갔단다.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 작가는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아버지, 즉 암 환자에 대해서 자신이 너무 아는 것이 없었던 것 같아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그 웹툰 역시 그만의 참회록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암 환자라는 말 대신 ‘아만자’라는 애칭을 만들어 내고 죽어가는 주인공의 고통을 때로는 징그럽게 슬프고 때로는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웃기게 표현하며, 그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용서했을지도 모른다. 원고 쓰다 울고 다시 눈물 닦으며 원고를 쓰며 내가 그랬듯이. 

그리고 언젠가는 염치없어 울지도 못하고 ‘셀프 싸대기’를 날리던 드라마 속 박완도 스스로를 위로하고 자신의 아픔을 통해 또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글을 썼으면 좋겠다. 

글 | 한지원
한지원 님은 1990년부터 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간극장> <KBS 스페셜> <그것이 알고 싶다> <VJ 특공대> <명작 스캔들> <TV 책을 보다> <EBS 다큐시선> 등 주로 교양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를 집필했습니다. 2018년 현재 KBS <한국인의 밥상>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