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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쉼표
[수리수리 정가이버] 농사의 기억, 수경재배 도전기

오! 나의 태양

십여 년 전 온 가족이 대전광역시의 시내에서 살다가 충남 공주의 한 시골마을로 이사 가서 꼬박 5년을 살았다. 회사생활을 하다가 지병이 악화되어 직장을 그만 두고 공기 좋은 곳을 찾아서 시작한 농촌생활이었다. 아이들은 한 학년에 한 반뿐인 작은 학교에 다녔고 나는 프리랜서로 일거리를 구해 재택근무를 하며 틈틈이 텃밭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여느 도시의 아이들처럼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기를 달고 살던 아이들이 시골생활을 하면서 병원은 구경할 일조차 없는 건강한 아이들로 바뀌었다. 아토피가 심했던 아들도 증상이 완전히 사라졌고, 나도 가끔 검사를 하기 위해서 병원에 가는 것 말고는 병원신세를 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진짜 휴식 같았던 텃밭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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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분야의 엔지니어로 제품을 개발하는 일에 집중해서 프로그램을 짤 때면 진짜로 머리가 뜨거워져서 김이 날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농사일을 할 때는 땅을 딛고 서 있는 두 다리에서 든든한 기운이 느껴진다. 흙을 만지며 허리 굽혀 일을 하다 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편해져서 몸은 힘들지만 진짜 휴식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이 건강해진 것도 맑은 공기와 흙이 주는 좋은 기운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손수 농사지은 것을 수확해서 친구들이나 친척들과 나누어 먹는 기쁨은 다른 데서는 느끼기 어려운 즐거움이었다. 

처음엔 상추나 고구마 같은 것을 심다가 나중에는 비록 두 마지기뿐이었지만 논농사도 짓게 되었고 관리기라고 하는 작은 농기계도 갖추게 되었다. 가끔만 사용하게 되는 농기계가 말을 듣지 않으면 분해해서 손수 고치며 사용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전자분야의 기술자지만 기계에 대해 배우던 기술 과목은 중학교 시절에 가장 좋아하던 과목 중 하나였다.

그러다가 부모님이 계시는 곳과 가까운 경기도로 다시 이사를 하게 되었고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는 다시 도시생활에 익숙해졌고 농촌에서 작은 학교를 다녔던 아이들도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해서 완전히 도시의 아이들이 됐다. 혹시나 어린 아이들이 도시의 생활을 힘들어 하지 않을까 걱정 했었지만 농촌생활의 경험은 오히려 아이들에게 커다란 장점이 되었다.
흙과 가까이 지내던 시골 생활이 익숙해져서 아파트 생활이 어색하기도 했고, 시골로 이사 가자마자 분양받아 키웠던 진돗개와 함께 살기 위해서 작은 마당이 딸린 집으로 이사했다. 마당에는 오래된 감나무와 대추나무가 한 그루씩만 자라고 있을 뿐이었고 나머지 공간은 모두 비어 있었다. 이사를 오자마자 마당의 빈 공간에 이것저것 심기 시작했다. 상추, 고추, 오이, 가지, 방울토마토, 깻잎…. 비어 있는 땅이 아깝기도 했고 도시로 이사 오면서 농사를 짓지 못하는 아쉬움을 작은 마당에서라도 달래고 싶었다.

하지만 3층이나 되는 이웃집들이 가깝게 붙어 있으니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늘이 져서 식물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부실하게 키만 훌쩍 커버렸다. 비교적 일조량이 부족해도 잘 자란다는 고구마도 심어 보았지만 고구마를 한 개도 수확할 수 없었다. 햇빛이 그렇게 소중한 것인지 미처 몰랐었다. 도시 근교에서 분양하는 텃밭들이 있지만 규모도 너무 작고 특히나 매년 새로 분양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흔히들 농사는 봄에 시작해서 가을에 끝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가을에도 새로운 농사가 시작된다. 마치 태극 문양에서 음양이 서로 꼬리를 맞물고 돌아가듯이 봄에 심은 작물들을 수확하는 가을에 마늘과 양파 같은 작물을 심어서 이듬해 6월에 수확하게 된다. 마늘, 양파는 텃밭농사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용한 작물이다. 밭에서 화학비료를 주지 않고 키운 마늘이나 양파는 마치 사과처럼 단단하고 향이 좋다. 하지만 매년 새로 분양 받아야 하는 도시의 텃밭에서는 그런 것을 심을 수가 없으니 애초에 관심이 가질 않았다.

배관작업에 조명설치까지…그런데 맛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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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우연히 알게 된 것이 실내의 베란다에서 짓는 수경재배 방식의 농사였다. 흙에서 짓는 농사에 비할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왠지 도시와 어울리는 농사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재미있게 느껴졌던 방법이 있는데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물고기를 키우면서 그 물을 이용해서 식물을 키우는 방식이었다. 요즘 농업박람회에 가면 온통 이 방식과 관련된 것이 전시되어 있을 만큼 인기가 있는 ‘아쿠아포닉스’라고 하는 새로운 농법이다.

물고기가 사료를 먹고 배설하면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이 배설물을 식물이 섭취할 수 있는 상태로 분해하고 그렇게 얻어진 영양분으로 식물을 키우는 것이다. 보통의 수경재배가 양액이라고 하는 화학비료를 이용해서 농사를 짓는데 반해 자연적인 물고기의 배설물을 이용하니 유기농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물고기를 키우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취미로 해오던 것이라 나에게 꼭 맞는 농사법이라 여겼다.
그런데 물고기가 살고 있는 수조에서 물을 끌어다 식물이 살고 있는 곳을 순환해서 다시 수조로 돌아가도록 하려면 꽤나 까다로운 배관작업이 필요했다. 배관작업에 필요한 부품을 구하느라 동네의 대형 철물점을 수도 없이 드나들었다. 그리고 베란다에서도 햇빛이 부족했기 때문에 인공조명을 해주어야 했고 효율적인 조명을 위해서 전기를 아낄 수 있는 LED를 사다가 직접 조명기구도 만들었다. 

그런 작업을 하다 보니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목수며 배관공이 되고 전기기술자가 된 듯했다. 하지만 실내에서 1년 내내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드디어 완성했고, 낚시를 가서 함께 키울 물고기도 잡아와 농사를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흙에서 자라는 상추며 토마토 같은 것이 물속에 뿌리를 내리고도 잘 자랐다. 늘 물이 공급되니 오히려 더 빨리 자라는 것 같았다. 마침내 새로운 농사법으로 채소와 방울토마토를 수확하게 되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유기농 채소와 같은 깊은 맛이 느껴지지를 않았다. 식물에게 필요한 갖가지 영양분이 물고기의 배설물로는 부족했던 것이다. 관련 자료들을 찾아서 더 공부해 보니 수십 가지의 무기물들을 인위적으로 공급해 줘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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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건 내가 생각했던 유기농에 가까운 농사법이 아니었다. 게다가 인공조명 때문에 다음 달 전기요금이 평소의 3배 가까운 금액이 나왔다. 아무리 효율이 좋은 LED조명이라 해도 햇빛에 가까운 조명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전기가 필요했고 평소보다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자 할증구간에 들어선 것이었다. 한마디로 늘어난 전기요금으로 차라리 채소를 사다 먹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평소에 잊고 지내던 햇빛과 흙의 고마움을 절실하게 확인하게 된 경험이었다. 이번 이야기는 결국 실패담으로 끝났지만 더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언젠가 마음껏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을 구하면 흙과 햇빛을 더 없이 소중하고 고맙게 대하게 되리라는. 오! 나의 태양.

글 | 정한섭 (bearfeet@naver.com)
1994년부터 통신과 방송 관련 장비를 개발하는 전자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재택근무를 하며 아빠로서 두 아이의 육아를 담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요즘은 아이들에게 수학과 코딩을 가르치는 일을 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