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1   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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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 스토리텔링
판도라 상자를 뛰쳐나온 경쟁심의 두 얼굴

라이벌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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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형을 사랑했어.”
“그런 말을 믿지 않아.”
“믿지 않아도 돼. 하지만 아버지는 형이 갖다 주는 것이라면 다 좋아하셨어. 그런데 나는 미워했어. 내가 주는 건 뭐든 싫어했지.”
“모르겠다,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어.”
“난 아버지를 사랑했어.”
 

소설 《에덴의 동쪽》에서 형 아론과 동생 칼이 나누는 대화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을 모델로 한 이 작품은 위의 짧은 내용만으로도 쌍둥이 형제의 갈등과 대립, 애증의 구도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부모의 관심이나 사랑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것을 ‘형제간 경쟁심(sibling rivalry)’이라고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유전자 속에 포함되어 있는 라이벌 의식은 높은 유전적 연관도(50%)를 가지고 있다. 

칼은 형 아론의 여자 친구 에브라를 사랑한다. 에브라 또한 상처가 많은 칼에게 연민과 동시에 조금씩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다. 에브라를 사이에 두고 형제간의 갈등은 점점 커져만 간다. “It’s awful not to be loved, it’s the worst thing in the world(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제일 괴로운 일이다).”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칼의 아픔을 대변하듯 에브라가 아버지 아담에게 한 말이다. 지금껏 역대 영화 속 명대사로 꼽힐 정도로 애절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성서 인물 중 쌍둥이형제 에서와 야곱도 부모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한다. 아버지 이삭은 사냥을 하는 에서를, 어머니 리브가는 조용히 장막에 머물던 야곱을 사랑한다. 부모의 일방적 편애는 형제에게 갈등과 반목을 불러온다. 이런 경우 두 쪽 모두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다. 야곱은 편애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낳은 열두 아들 중 요셉을 유난히 사랑하여 채색 옷을 입혀 지위를 높였다. 마침내 요셉을 시기한 형제들이 그를 아라비아 대상에게 종으로 팔아버리고 만다.  

선의의 경쟁과 지나친 승부욕

라이벌은 같은 분야, 혹은 같은 목적을 위해 상대가 될 만한 좋은 호적수, 맞수를 일컫는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라이벌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와 비교를 하면서 우월감, 또는 열등감으로 나타나는 미묘한 심리는 물질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더 복잡해지고 다양해졌다.  

선의의 경쟁에 있어서 자기 극복의 의지와 관용은 자신의 잠재적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된다. 반대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 지나친 승부욕은 대립, 불신, 상호비방 같은 역효과를 불러와 결국 파멸로 치닫는다.  

스포츠는 경쟁 심리를 고도로 활용하는 분야 중 하나다. 정신과 전문의 전홍진 박사는 ‘올림픽 경기와 경쟁심리’라는 기고문에서 심리적인 자신감이나 자부심도 경쟁 심리에서 태어나는데 스포츠는 경쟁 심리를 승화하여 가장 건강하게 표출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또 그는 스포츠 정신은 승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결과를 깨끗하게 받아들이는 ‘페어플레이’라는 개념으로 압축된다며 팀 전체를 생각하고, 내가 아닌 상대편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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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버드와 매직 존슨은 소속팀이 NBA 최고의 명가이면서 라이벌인 보스턴 셀틱스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라는 것 외에도 여러 모로 흥미를 가질만한 대조적인 선수였다. 래리 버드는 백인, 매직 존슨은 흑인이었다. 또 래리 버드는 시골 출신이며 지공 위주의 농구 경기를 하는 반면, 매직 존슨은 도시 출신이며 속공 농구를 구사했다. 게다가 신장도 래리 버드가 205㎝, 매직 존슨은 206㎝로 불과 1센티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두 선수는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관중들을 NBA로 끌어들여 흥행의 역사를 다시 쓰는 데 크게 기여했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두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1504년 2월, 피렌체 정부로부터 대회의장을 꾸미는 대규모 벽화 작업을 의뢰받았을 때 처음 만났다. 당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52세, 미켈란젤로는 29세였다. 그들은 상대의 작품의 일부를 모사하며 서로의 재능에 경의를 표했지만 일화에 의하면 미켈란젤로는 자신보다 사교성과 명성이 좋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무척 싫어했다고 한다. 

‘색다른 맞수’ 피카소와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와 앙리 마티스도 라이벌 관계였다. 미국의 부유한 집안 출신의 작가이면서 미술품 거래상인 거트루드 스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두 거장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마티스의 그림이 거트루드 스타인 거실에 장식이 되어 있는 걸 보고 분개한 피카소가 더 멋진 그림을 그려 그녀에게 받쳤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내 그림을 피카소 그림과 같이 전시하지 말아 달라. 불꽃같이 강렬하고 번득이는 그의 그림들 앞에서 내 그림이 초라해 보이지 않게.” (마티스)
“나를 괴롭혔던 마티스가 사라졌다. 나의 그림이 뼈대를 형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마티스다. 그는 나의 영원한 멘토이자 라이벌이었다.”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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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왼쪽)과 앙리 마티스는 서로를 존중한 라이벌이었다.

 

두 화가는 비평가들의 평가는 싫어했지만 서로에 대한 비평은 신중하게 받아들여 차후 작품에 어떤 식으로 표현했다. 사실 피카소는 뭔가를 얻어내기 위해 마티스의 화실을 종종 찾아갔다. 마티스도 역시 피카소와 자신의 사이엔 호혜적인 상호 침투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끊임없는 견제와 대립을 통하여 피카소는 입체파, 마티스는 야수파의 선두주자로 20세기 미술사의 한 획을 긋는 대가로 거듭났다.  

우리나라에도 숱한 화제를 뿌리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등극한 라이벌들이 있었다. 1960년대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았던 그 시절, 남정임, 윤정희, 문희가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다. 최고의 미녀인 데다 연기력까지 갖춘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화제를 몰고 다니기에 충분했다. 정인엽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세 스타가 동시에 출연하여 자존심 대결을 벌인 영화가 <결혼 교실>이다. 배역 분량, 연기에 대한 욕심, 심지어 포스터에 누구 이름이 먼저 오르는 가를 두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던 <결혼 교실>은 1970년 국도 극장에서 개봉되어 대 히트를 쳤다.
1970년대, 남진과 나훈아의 등장은 원조 오빠 부대라는 신드롬을 몰고 왔다. 개성 있는 외모와 독특한 음색으로 대중의 취향을 양분하며 가요계의 쌍벽을 이뤘던 그들은 수많은 화제와 히트곡으로 국민가수로 우뚝 섰다. 최근까지 신곡을 발표하고 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경쟁의식이 키운 문학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로 우리나라 문학을 이끌었던 작가에게도 경쟁의식은 치열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은  《라이벌 의식》에서 한국문학사의 주요 장면과 한국문학사에 ‘창조력’을 공급한 문제적 작가들의 ‘라이벌 의식’을 다섯 유형으로 설명한다.  

“문인이란 상상적인 글쓰기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지만 그도 한 인간인지라 당연히도 인간적 삶의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헤겔은 이를 승인 욕망 또는 대등 욕망이라 규정했다. (중략) 라이벌이라는 개념은 이 창조력에 관여하는 문제적 개인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창조적인 것에 관여하는 또 다른 대립적 자아인 만큼 ‘위신을 위한 투쟁’이 불가피하다.” 

그는 이 책에서 알게 모르게 작가들을 짓눌렀던 라이벌 의식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이들이 처했던 시대적 상황과 이들이 한국문학사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를 생생하게 그린다. 이어 자각 능력과 스스로 개선하려는 의지의 문제로 경쟁의식이 선의의 경쟁이 되어 더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인간 행복을 위한 신들의 경쟁

판도라의 상자 안에는 시기, 증오, 질투, 잔인성, 분노, 굶주림, 가난, 고통, 질병, 노화 등이 들어 있었다. 판도라가 호기심으로 상자를 여는 순간 세상으로 나와 불행과 재앙을 불러왔지만 ‘희망’은 그 안에 남아있었다. 희망은 갖가지 불행에 시달리는 인간들에게 긍정적인 키워드로 언제나 반전을 선사했다.  

그러고 보면 신화는 복잡한 내면과 심리를 가진 인간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 가지 예로 포세이돈과 아테나가 ‘아티가’라는 도시를 놓고 전쟁을 했을 때 심판관들은 사람에게 더 좋은 선물을 주는 쪽을 도시의 수호자로 삼겠다는 규칙을 내걸었다. 신들도 인간의 행복을 위해 경쟁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올리브를 선물한 아테나가 바닷물을 선물한 포세이돈을 이겨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아티가를 아테나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형들에게 쫓겨났지만 나중에 이집트 총리직에 오른 요셉은 이스라엘에 기근이 들어 양식을 구하러 온 형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며 극진히 대접한다. ‘형제들 사이의 애착(sibling affection)’이라는 진화심리학적 개념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형제들 사이의 애착은 인간의 건설적인 협동과 집단 형성으로 이어졌다.
뭔가를 마시는 것은 찻잔을 마주하고 화해를 시도하는, 적극적이고 따스한 행위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낯선 사람끼리 만나 어색한 침묵을 녹여야 할 때
잘 지내던 사람들끼리 오해가 쌓여 화해의 대화를 시작해야 할 때도
우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차 한 잔 하시겠어요” 한다
 _ 이해인, <차 한 잔 하시겠어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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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서윤
오서윤 님은 오서윤 님은 2011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2013년 <평화신문>과 2014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