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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쉼표
[여행수첩] 호주 횡단 4,610km ②

포트 더글라스, 모스맨 협곡

호주 여행 2일차 아침이 밝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케언즈에 살고 있는 후배를 만났다. 요리사로 일하고 있는 동생은 이번 여정의 ‘특급 도우미’를 자처하며 휴가를 낸 것이다.

후배의 차를 타고 제일 먼저 들른 곳은 탄산 커피(커피에 탄산을 녹인 음료)를 파는 시핑 덕(Sipping Duck)이라는 카페였다. 이 카페는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차량 정비소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카페 안에 들어서자 중년의 여주인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카페 안은 직접 그린 미술품들이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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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의 휴가지로 유명세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차에 올라 클린턴 대통령의 휴가지로 유명해진 포트 더글라스(Port Douglas)로 향했다. 도로 옆에 사탕수수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후배 말에 따르면 호주 정부는 미래 에너지 확보를 위해 사탕수수 재배를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지원 방식은 간단했다. 정부가 땅주인들에게 대지를 빌려 사탕수수를 재배한다. 그리고 이 사탕수수에서 액을 추출하여 미래 에너지의 원재료로 비축하고 있다고 한다(옥수수 추출물로 석유를 대체하는 것과 유사한 개념). 석유 에너지가 고갈된 후를 준비하는 호주 정부의 노력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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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사탕수수밭


포트 더글라스는 호주 퀸즈랜드 주에 위치한 인구가 1만 명도 안 되는 작은 휴양도시다. 2,600km 이상 산호가 펼쳐진 그레이트베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의 관문으로 전 세계 부호들이 요트를 정박하고, 휴가를 보내면서 고급 휴양지로 탈바꿈했다. 특히 이 곳은 몇 년 전, 클린턴(전 미국대통령)이 방문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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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내리자 파랗던 하늘은 금세 두터운 구름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마침 포트 더글라스에서 유명한 패디스 아일리쉬 펍앤그릴(Paddy’s Irish Pub & Grill)이라는 식당이 열려있어 비를 피해 들어갔다. 식당 부호(우리나라로 치면 백종원씨 같은 분) 패디(Paddy) 씨의 식당 중 하나라고 했다. 패디 씨는 포트 더글라스 외에 케언즈 시내에도 여러 개의 맛집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거부임에도 후줄근한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식당에 출몰해 그 자체가 시선을 끈다고 한다.

식당 사장님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피쉬앤칩스와 맥주가 나왔다. 패디스 피쉬앤칩스는 지금까지 먹어왔던 그것과 달랐다. 대부분의 피시앤칩스가 헤이크(Hake:대구과 생선)를 재료로 한다면 이 식당의 피시앤칩스는 고등어를 재료로 사용했다. 알고 보니 케언즈 주변에 고등어 어획량이 많아 피시앤칩스 재료도 고등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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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씨앗, 불행의 씨앗

싱그러운 햇살을 받으며 다음 목적지인 모스만 협곡(Mossman Gorge)으로 향했다. 모스만 협곡은 서울 크기의 15배에 달하는 광활한 지역으로 케언즈에서 약 80km 떨어져 있다. 이 곳은 오래 전부터 호주 원주민들이 평화롭게 살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1872년 이 지역을 찾은 월리엄 한(William Hann)이 금을 발견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월리엄 한은 퀀즈랜드 주정부의 허가를 받고 요크 반도를 탐사하던 중, 모스만 협곡에서 이어진 파머강 부근에서 금을 발견한다. 이후 4개월 만에 금광 채굴을 위해 쿡타운(Cooktown)이라는 광산 마을이 건설된다. 삽시간에 광부 및 공무원 등 약 3,000명이 조용한 마을에 들이닥치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1876년, 인근 지역인 호킨스강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거주민은 급격하게 늘어 약 12,000명에 이른다. 이때 금을 비롯한 광물을 운송하기 위해 포트 더글라스가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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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지역의 금광이 개발됨에 따라 수천 년간 산속에 살던 원주민(쿠쿠야란지족, Ku ku yalanji)과 외지인들이 충돌한다. 양측의 충돌은 10여 년에 걸쳐 상호간의 보복 살인 형태로 이어졌고, 결국 호주 정부가 개입하여 원주민들을 무력으로 제압하면서 일단락된다. 금과 다이아몬드가 외지인들에게는 희망의 씨앗이었다면, 원주민들에게는 불행의 씨앗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과거 피로 얼룩진 분쟁의 장소가 지금은 원주민들의 역사와 삶을 보존하는 공원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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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입구에서 티켓을 구입해 입장하니 트레킹 코스로 이동하는 셔틀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약 10여 분간 이동해 트레킹 코스 입구에 도착했다. 폭우가 내린 이후라 짙은 안개가 산속 구석구석을 메우고 있었다. 안개가 자욱하게 드리워진 숲의 모습은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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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을 시작한 지 30여 분 후, 첫 번째 도착 지점인 모스만강에 도착했다. 비가 내린 직후라 강물의 흐름은 성난 황소가 내달리는 것처럼 거셌다. 주변 바위에 올라 거센 물살을 감상하며 120여 년 전 이 곳에서 치열하게 싸웠을 원주민들과 외지인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서로의 삶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을 그들은 이 곳에서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한동안 물살을 감상하다 숲으로 진입했다. 숲과 이어진 길에서 제일 처음 렉스크리프 다리(Rex Creep Bridge)를 건넜다. 1985년 최초 건립되었던 렉스크리프 다리는 안전을 위해 2010년 다시 지어졌는데, 자연 보호를 위해 모든 건설 자재를 인부들이 직접 들고 와서 건설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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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 데인트리 지역(Daintree Region)에 들어서자 지금까지 보아왔던 식물군과는 다른 특이한 형태의 수목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 중에서 단연 눈길을 끈 것은 거대한 ‘교살자 무화과 나무(Strangler fig tree)’였다. 나무의 이름에서 느껴지듯 이 나무는 성장하면서 주변의 식물, 바위 등 모든 물체를 감싸 옥죄고 부숴버린다. 이 나무의 악명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예가 바로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 유적인데, 나무가 유적에 뿌리를 내리고 몸통과 가지가 성장하면서 유적지를 감싸 부숴버린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 나무를 제거하다 보면 유적도 함께 무너져 내리는 경우가 많아 성장 완화제로 파괴 속도를 늦추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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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만난 ‘교살자 무화과 나무’는 앙코르와트의 일족처럼 유적을 부수지는 않았지만 거대하고 특이한 외양은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 ‘교살자 무화과 나무’는 군락을 이루고 있었는데 각각의 나무는 이름을 붙여 주어도 될 만큼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다음 일정을 위해 아쉽지만 발길을 돌려 케언즈로 돌아왔다. 

호주에도 포장마차가…

케언즈로 돌아오는 길에 후배가 선상 포장마차에서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호주에서 포장 마차라니… 그 존재만으로도 매력적이어서 꼭 가겠노라고 마음먹었다. 숙소에 들러 한동안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쯤 후배가 차를 몰고 왔다.
선상 포장마차는 어제 들렀던 라군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었다. 선창에 두 대의 요트를 정박해 놓고 그 위에서 술과 해산물(튀김과 찜)을 파는 선상 식당이었다. 저녁 6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메뉴를 보고 주문할 요리를 정했다. 메뉴에는 고가의 크레이 피쉬(Crayfish), 머드크랩(Mud Crab)은 물론 상대적으로 저렴한 타이거 새우(Tiger Shrimp)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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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여분을 기다리자 자리가 났다. 우리는 메뉴 중에서 타이거 새우(AUD 35, 약 20,000원)를 주문했다. 선상 포차 안쪽에는 커다란 라운드 테이블(12~15인용)과 두 개의 사각 테이블(8~10인용, 4인용)이 놓여 있었다. 우리는 라운드 테이블에 앉아 처음 보는 10여 명의 사람들과 테이블을 나누어 쓰게 되었다. 한국의 포장마차에서 느낄 수 있는 정감 어린 분위기를 호주에서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탄산 커피를 마시며 청량하게 시작했던 하루는 클린턴 대통령이 골프를 즐겼던 포트 더글라스를 거쳐 비극적인 역사를 간직한 숲을 지나 정감 어린 선상 포차에서 마무리 되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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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 포장마차에서 마주쳤던 사람들

[지난 내용 보기 ]
1. 호주 횡단 4,610km ①_케언즈의 바다, 펠리컨의 군무

글·사진·삽화 | 최상혁
최상혁 님은 20년 이상 프로 광고맨이자 삽화작가, 여행작가입니다. 2016년 《당신이 남아공에 꼭 가야만 하는 이유》를 출간했고, 이 호주횡단기는 《당신이 호주에 꼭 가야만 하는 이유》라는 타이틀로 브런치북(brunch.co.kr/brunchbook)에도 수록돼 있습니다.
[여행수첩] 호주 횡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