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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볶는 마을
커피향미를 찾아서 7

‘인스턴트 원두커피’라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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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커피가 소량 첨가된 인스턴트커피

커피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관련 업체들도 늘어나다 보니 광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자사 제품의 소비를 늘리기 위한 업체들의 노력은 가히 눈물겹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얄팍한 상술에 소비자들이 관용을 베풀 필요는 없다.
광고가 제 아무리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활동이라지만 과장이 도를 넘는다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혹시 그것이 전문 용어를 내세워 소비자의 무지(無知)를 악용하려는 뜻조차 비치는 것이라면 용납해선 안 된다.

모호함의 상술…인스턴트와 원두는 다른 것

‘인스턴트 원두커피’라는 출처불명의 용어를 동원한 광고가 그럴 위험성이 커 보인다. 용어만 봐서는 이런 이름을 붙인 제품의 정체가 인스턴트커피인지 원두커피인지 알 수 없다. 인스턴트커피와 원두커피는 장르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커피 원두는 물에 녹지 않는 성분들이 70%를 넘게 차지한다. 따라서 커피를 추출하고 난 뒤 버려지는 게 많을 수밖에 없다. 원두를 갈아 그대로 물에 끓여 마시면 찌꺼기가 치아에 끼어 불쾌감을 준다. 또 커피 액에 가라앉은 상태로 계속 성분이 우러나 잡미가 두드러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커피를 추출할 때 물에 녹지 않는 고형물질을 필터로 걸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찌꺼기가 치아에 끼지 않도록 커피를 걸러내 마시는 여과법(Filtration)은 17세기 중반 프랑스 귀족들이 만들어 낸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물을 부으면 단숨에 녹는 인스턴트커피는 20세기 들어서야 미국에서 탄생했다.
커피 원두의 70%가 물에 녹지 않는데, 어떻게 인스턴트커피는 100% 물에 녹는 걸까? 원리는 단순하다. 물에 녹는 성분들만 가려내면 되는 것이다. 방법 또한 간단하다. 한 잔의 커피, 다시 말해 물에 녹지 않는 찌꺼기를 걸러낸 커피 액에는 물에 녹는 성분들만이 들어 있게 된다. 이것에 열을 가해 물기를 전부 날려 보내 가루로 만든 것이 인스턴트커피이다. 여기에 물을 부으면 가루들은 마땅히 모두 녹게 된다. 물에 한 번 녹았던 성분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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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원두는 70% 가량이 물에 녹지 않기 때문에 종이필터로 찌꺼기를 걸러 낸다. 반면 인스턴트커피는 추출된 커피 액에서 물을 날려 보낸 것이기 때문에 모두 물에 녹는 성분들로 이루어진다.

인스턴트커피는 마시기는 편하지만 향미가 크게 떨어진다. 향미만 보면, 시쳇말로 ‘두 번 죽은 커피’인 것이다. 커피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향미의 상당 부분이 공기로 날아가고, 이 과정을 거친 커피 액을 다시 가열하면 향미가 치명적으로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인스턴트커피에 설탕과 크림을 넣어 마시는 것이다. 인스턴트커피에서 마치 좋은 향미가 나오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은 허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품공전》에도 없는 용어

그런데 커피업체들이 인스턴트 커피가루에 원두커피를 미세하게 갈아 넣고는 마치 좋은 향미가 나는 좋은 품질의 커피인 양 꾸미고 있다. 더욱이 ‘인스턴트 원두커피’라는 기괴한 용어를 만들어 소비자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흔히 ‘자가용 비행기’라고 하면 비행기를 의미한다. ‘자가용 버스’라고 하면 그것은 어찌됐건 버스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스턴트 원두커피’라고 하면 소비자들은 그것을 ‘원두커피’라고 받아들인다.

식품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제조 및 규격을 정리해 놓은 《식품공전》에는 ‘인스턴트 원두커피’라는 항목이나 규정이 없다. 현행 규정상으로는 출처가 불분명한 상품이지만,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는 판매량을 체크한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식품산업통계정보시스템에서는 ‘인스턴트 원두커피’를 ‘인스턴트커피’로 간주해 집계를 하고 있다.

이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커피우유’가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 ‘커피우유’는 우유일까, 커피일까? ‘커피우유’에 붙은 우유라는 이름 때문에 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커피우유’를 ‘우유’로 인식해 무분별하게 섭취함으로써 카페인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런 지적에 따라 2016년 말에 ‘커피우유’를 ‘커피’로 분류했다.

‘인스턴트커피’로 분명히 표기해야

이런 조치를 ‘인스턴트 원두커피’에도 적용해야 한다. 당국은 ‘인스턴트 원두커피’가 소비자들 사이에서 원두커피로 인식되는 상황을 바로 잡도록 애를 써야 한다. 이런 상품을 판매하는 업체들의 양심에만 맡겨 둘 일이 아니다.
더욱이 인스턴트 원두커피라는 것을 잘 보면 95~97%를 인스턴트커피가 차지한다. 원두커피는 3~5%만 들어 있을 뿐이다. 물 95%에 우유를 5% 가량 넣고 우유라고 판다면 아마도 난리가 날 것이다.

여기서 밝혀 둘 것은 소위 ‘인스턴트 원두커피’라는 상품을 처음 만들어낸 미국의 대형회사는 이를 ‘인스턴트커피’라고 분명하게 표기해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인스턴트 원두커피’라고 해서 판매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라는 옹호론을 펼친다. 그들은 굳이 따지자면 그것을 사먹는 사람들이 ‘속는 죄’라고 변호하기까지 한다.
이런 광고가 소비자들의 마음을 유쾌하게 할 수 없다. 그렇게 광고하는 상품은 결국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게 된다.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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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타벅스 매장에 진열된 비아(VIA) 인스턴트커피. 국내에서 ‘인스턴트 원두커피’로 명명되는 제품들의 원조이다. 비아는 제품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인스턴트커피’라고 밝히고 있다.
글 | 박영순
사진 | 커피비평가협회(CCA, www.ccacoffee.co.kr)
박영순 님은 21년간 신문기자로서 와인, 위스키, 사케, 차, 맥주, 커피 등 식음료를 취재하면서 향미에 몰입했습니다. 미국,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에서 향미 관련한 자격증 30여종을 비롯해 미국요리대학(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서 플레이버 마스터를 취득한 뒤 인스트럭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과 경민대 호텔외식조리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년 <커피인문학>을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