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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人2019.11 | Vol.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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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손인수
에디터 오형석 조경숙 김정현
디자인 이동휘 박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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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카페 2019.11 | Vol.3
월간 카페人  /  제3호  /  지상의 쉼표
지상의 쉼표
탱자를 위한 변명

탱자탱자~ 잘 노는 게 예술이야!

탱자싸롱의 탱자는 탱자나무가 아닙니다. ‘탱자탱자 놀자’의 그 탱자입니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 탱자싸롱엔 탱자나무가 없습니다.

탱자싸롱의 싸롱은 룸싸롱이 아닙니다. 영문 이름 ‘SALON de TANGZA’에서 알 수 있듯 프랑스식 살롱(Salon)입니다. 그렇다고 이태리타월이 이태리풍이 아니듯 탱자싸롱은 불란서풍도 아닙니다. 탱자싸롱은 제주토착형 19세기 프랑스식 살롱을 추구합니다. 수준 높은 대화와 토론이 벌어지는 정통 살롱보다 조금은 ‘싸’구려 대화를 나누는 곳이기에 ‘살’롱이 아닌 ‘싸’롱입니다.

탱자탱자 쉬고 놀면서 적당한 인문학적 통찰과 문화적 소양을 바탕으로 유쾌한 지적유희를 만끽하는 곳,
낭만과 여유 속에 알 수 없는 기대와 설렘이 있는 곳,
탱자싸롱은 그런 곳이 되길 원합니다.

6년 전 유쾌한 제주돌집 ‘탱자싸롱’ 민박을 오픈하면서 네이밍에 담긴 의미와 꼼수에 관해 끄적여 본 글이다. ‘밍기적’이나 ‘뒹굴’처럼 왠지 느리고 게을러 보이는 순우리말 단어 중 ‘탱자탱자’를 일찌감치 골라 놓은 후, 당시엔 낯설지만 지금은 간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살롱’과 결합해 민박집 이름을 완성했다. 하찮고 쓸모없이 뒹굴뒹굴 노는 모습을 ‘탱자탱자’라고 하는 걸 보면 역시 그 어원은 탱자나무에서 온 게 틀림없다.

제주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탱자싸롱’ 전경
제주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탱자싸롱’ 전경

‘귤화위지(橘化爲枳)’,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고사성어가 있다. 이 말은 중국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회수(淮水)라는 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의 토양이나 기후가 크게 다른데, 귤을 회수 이북에 심으면 잘 자라지 못해 탱자처럼 조그맣고 딱딱해진다는 데서 유래된 것이다. 즉 사람이나 사물도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성질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귤보다 ‘탱자’로 사는 이유

다분히 탱자를 깔보는 듯한 이런 표현에 반기를 들련다. 회수(淮水)보다 훨씬 장대한 남해 바다를 건너 제주에 정착한지도 만 6년. 방위상으론 귤이 돼야 마땅하지만 난 여전히 탱자로 살고 있다. 사실 탱자는 제주이민자들의 삶을 쏙 빼 닮았다.

탱자는 얼핏 하찮다. 보기엔 좋아도 먹지 못하니 경제적 가치가 덜하다. 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운 육지의 삶을 버리고 이 곳 제주에 정착한 이주민들은 자칫 루저(Loser)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 실제로 이 곳 제주의 많은 이주민들이 경제적으론 넉넉하지 못한 분들이 많다. 단지 부족한 재화를 풍족한 마음으로 채워가며 고만고만하게 만족하며 살아가고들 계신다.

탱자는 열매보단 가시 돋친 무성한 줄기로 인해 울타리 대용, 특히 과거 귀양 온 사람을 집안에 가두는 형벌인 위리안치(圍籬安置)의 용도로 그나마 쓰임새를 인정받곤 했다. ‘괸당문화’로 알려진 제주도 지역민들의 텃새로 신고식을 톡톡히 치른 이주민들이 종종 있다. 남해를 넘어온 ‘육지것’들 중 현지인들과 잘 어울려 ‘반귤반탱’으로 소프트랜딩에 성공하신 분들도 있지만 탱자나무 본연의 쓰임새답게 스스로 울타리를 치고 살아가시는 이주민들도 꽤 많다. 나 역시 이웃들과 잘 지내는 편이지만 몇 십 년을 쌓아 온 나만의 울타리를 굳이 허물고 싶진 않다.

탱자나무에 열린 탱자열매
탱자나무에 열린 탱자열매

탱자들은 대개 4차원이다. 익숙한 육지를 마다하고 제주에 왔단 사실만으로 일단 4차원 기질이 내재해 있는 거다. 대도시에서 오랜 기간 살아 온 일반적인 사람들은 4차원형 인간을 단번에 알아본다. 문제는 4차원들끼리 만났을 때다. 4차원이 4차원을 만나면 대개 본인은 정상이고 상대방이 4차원이라고 생각하고 경계하거나 ‘내 과(科)가 아니다’라며 마음의 문을 닫곤 한다. 나 역시 과도하게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몇몇 개성 강한 농익은 탱자들을 만나면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귤보다 탱자가 좋다. ‘하찮음’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대개 예술적 촉이 좋기 때문이다. 그냥 흘려보낼 수 있는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 관심을 갖고 인격과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어느새 시(詩)가 튀어나오고 예술적 영감이 샘솟게 된다. 그런 사람들과 술이나 커피 한 잔을 나누며 통섭하는 지적유희를 나는 사랑하고 즐긴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역시 그런 하찮음의 미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생겨 난 트렌드일 거라고 확신한다.

게으름에서 꿈틀대는 예술의 씨앗

대표적 탱자형 인간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수필집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에서 글을 쓸 때 먼저 이야기가 있고 나중에 제목을 붙이기보다는 먼저 틀을 만든 후 ‘이 틀 속에 어떤 얘기가 들어갈까?’ 하고 생각을 시작한다고 한다. 즉 말장난으로부터 소설을 풀어나가려 하는 것이다.

하루키는 글을 쓰는 동안 저절로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것’이 점점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하고, 쓰는 작업을 통해 지금까지 형태를 띠지 않았던 것이 서서히 제대로 된 형태를 띠어간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이걸 써야 해!’라는 사명감도 중요하지만, 그런 사명감만큼이나 문학에서의 자연스러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의 저술 태도에 왠지 공감이 간다.

하루키처럼 문학성을 인정받은 거장의 이런 사고방식은 나 같은 천둥벌거숭이 작가지망생들에겐 은근히 가슴에 희망 같은 걸 불어 넣는다. 지금 쓰는 글 역시 민박 홍보용으로 그냥 ‘탱자예찬’이란 제목부터 써넣고 탱자를 훌륭한 놈으로 보이게 할 만한 에피소드들로 살을 채워나갔는데, 글을 써내려가다 보니 단순히 ‘탱자가 좋다’를 넘어 ‘예술가가 되려면 탱자를 닮아야한다’라는, 정말 내가 말하고 싶었던 내용들이 더 선명해졌다. 삼천포로 빠져야 좋은 글이 나올 때가 있다니, 세상 참 재밌다.

흔히 예술가들이 창작 활동에 사용하는 방법이나 관점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연스레 터득할 수 있는 것들이다. 다만 바쁜 일상으로 인해 그러한 재능을 계발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할 뿐이다. 시간적으로 자유로운 이곳 제주에서, 게으른 탱자의 시선으로 삶의 곳곳에 감추어진 예술의 씨앗들을 부지런히 발견해 보려 한다. 그것만이 줄어드는 삶의 열정을 되살릴 수 있고 낯선 제주의 삶에 만족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아트(Art)는 동사(動詞)다. 내가 사는 제주에선 탱자탱자 잘 노는 게 아트다!

글 | 지준호
지준호 님은 전직 광고쟁이(오리콤/제일기획 등) 7년차 제주이주민으로 구좌읍 세화리 부티크 제주민박 살롱드탱자와 유쾌한 제주돌집 탱자싸롱을 운영 중입니다. ‘바삭한 주노씨’란 작가명으로 브런치(http://brunch.co.kr/@junoji)에 재치 있는 에세이와 패러디 광고를 연재하며 호시탐탐 작가 데뷔를 노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