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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人2019.11 | Vol.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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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카페 2019.11 | Vol.3
월간 카페人  /  제3호  /  카페의 서재
카페의 서재
삶이라는 빙판의 두께

내가 누리는 다섯 가지 즐거움

삶이라는 빙판의 두께

군자삼락(君子三樂). 《맹자(孟子)》 <진심편(盡心篇)>에 나오는 말이다. 요즘 세상에 고루하게 맹자 타령할 일은 아니겠으나 그 내용 중 일부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게 많다. 내용인즉, 부모님이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父母俱存 兄弟無故),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땅을 굽어보아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仰不傀於天 俯不怍於人),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가르치는 것(得天下英才 而敎育之), 그 세 가지를 일컫는다.

세 번째의 즐거움은 교육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나 적용될 것이겠으나 앞의 두 가지는 군자가 아닌 소인들이 누리고 행하기에도 어긋나지 않는 말이다. 나는 군자 비슷한 처지도 못 되는 범부에 불과해 저런 거창한 삼락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즐거이 여기는 덕목이 있다. 그래 봐야 사사로운 도락에 불과하지만 내가 귀히 여기는 즐거움 다섯 가지를 꼽자면 다음과 같다.

내가 첫손에 꼽는 즐거움은 여행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낯선 자연풍경과 낯선 사물을 만나는 기쁨이 크다. 새로운 풍경, 새로운 사물을 접하는 건 익숙한 일상, 익숙한 주변 환경에서 빠지기 쉬운 타성과 나태로부터 벗어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정주형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지금도 나는 여행을 계획하고 날짜를 정하고 나면 소풍 앞둔 아이처럼 마음이 설렌다.

두 번째 즐거움은 길 걷기다. 요즘은 자주 걷질 못하지만 예전에는 쉬는 날이면 으레 길을 걷곤 했다. 따로 동무를 청할 필요 없이 단출하게 나서서 들이나 산길을 뚜벅뚜벅 걷는 건 대단히 매력적인 일이다. 고행처럼 걷는 길 위에서 내 삶을 되돌아보고 사색하고 때로는 어쭙잖은 시나 글감을 줍곤 한다. 길 걷기의 매력은 자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깊이 공감할 것이다.

세 번째 즐거움은 식물과의 만남이다. 당연히 앞서 언급한 여행이나 길 걷기의 연장선상에서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요인이다. 계절마다 산과 들에서 피고 지는 식물을 만나는 건 삶에서 누리는 크나큰 위안이자 행복이다. 그것들은 지금까지 내게 단 한 번도 지루함이나 싫증을 일으켜본 적이 없으며 늘 새로운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식물들이 지금은 내 밥벌이의 대상물이니 참으로 고마운 존재다.

네 번째 즐거움은 좋은 벗과 나누는 술이다. 벗과 술잔을 기울이며 삶과 인생, 문학이며 철학을 주제로 격의 없이 주고받는 대화는 팍팍한 삶에 공급하는 윤활유와도 같다. 뒷날 온몸으로 겪는 숙취의 괴로움을 다 상쇄하고도 남는다. 그리고 이따금 혼자 마시는 술도 그리 나쁘지 않다. 그 또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기에 그렇다. 다행히 아직은 내 몸이 적당한 양의 술을 용납하고 있어 때때로 고맙게 즐기고 있다.

다섯 번째 즐거움은 책 읽기다. 책은 오늘의 나를 키워준 자양분이자 혈액이나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읽은 책에서 지식만 얻은 게 아니라 삶의 지혜와 가치, 기본적인 인격과 품성을 기르는데 빚진 바가 크다. 한 가지 아쉬움은 아둔한 머리 때문에 책을 읽어도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가 머릿속에 남는 게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책은 내게 언제나 경외의 대상이다. 곁에 책이 있으면 식량을 쌓아둔 듯 뿌듯하다.

이 다섯 가지 말고도 삶에서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은 많다. 이따금 만나는 손자 손녀의 재롱을 보는 것, 줄거리와 영상미와 연기력이 잘 갖춰진 수준 높은 영화 보기, 아침 시간에 여러 장르의 음악 듣기 등도 내가 즐거이 여기는 것들이다. 살면서 즐거운 일만 누린다면야 좋겠지만 때때로 고통과 좌절, 분노, 슬픔, 회한 등의 감정도 겪게 마련이다. 바로 그럴 때 쓰기 위해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만나듯 삶을 더 살만한 것으로 바꿔주는 즐거움 몇 가지쯤은 비밀병기로 감춰두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 <카페의 서재> 제1권 《삶이라는 빙판의 두께》 중

 

삶이라는 빙판의 두께

책 소개 살펴보기

글 | 정충화
정충화 님은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식물해설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눈에 척척 식물, 나무의 이름을 불러줍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언제든 산과 들에서 만날 수 있는 식물들이 있어 든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