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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벼리커뮤니케이션
발행인 손인수
에디터 오형석 조경숙 김정현
디자인 이동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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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카페 2020.07 | Vol.8
월간 카페人  /  제8호  /  내 마음의 카페
내 마음의 카페
[밤9시의 커피]

‘커피 한 잔 하실래요?’의 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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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인생에도 끼어드는 위험, 
그러나 늘 위험을 무릅쓸 가치가 있는 것, 
그건 사랑.

_ 영화 <러브 어페어> 중에서

  

밤9시.
이 시간에 커피 한 잔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어. 그 중 하나가 커피 한 잔의 ‘주술’이 필요한 이들이지. 서로의 호감을 확인하기 위한 매개로는 커피가 제격이다. 왜 술이 아니냐고? 술은 자신이 취하거나 상대방을 취하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할 뿐, 심장 박동의 오작동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선 알코올보다 카페인이다. 커피는 ‘미필적 고의’를 용납하지 않으니까. 그러면 차는 어때? 차는 차 그 자체가 목적이야. 녹차든 얼그레이든 카모마일이든 차를 마시기 위함이지. 차외의 다른 목적은 닥칠 것. 그러니까 “우리 커피 한 잔 하실래요”라는 말 속에는 얼마나 많은 함의가 숨어있는지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오직 너에게만 집중하는 커피 한 잔.
어쿠스틱 콜라보의 노래가 울려퍼지던 봄 밤. 이제 갓 만남을 시작한 것 같은 한 쌍이 카페 <밤9시의 커피> 문을 열고 들어왔어. 

 

아무 일도 없는 저녁
집 앞을 걷다 밤공기가 좋아서
뜬금없이 이렇게 니가 보고 싶어 ♪

 

여자가 남자를 불러낸 것 같아.
아무렴, 누구든 그렇게 호출을 하고 호명을 해야 하지. 연애는 그렇게 시작되니까. 어떤 주파수가 맞아떨어졌는지 당사자만 알겠지만, 주파수 궁합이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주변 사람들도 감지할 수 있어. 그들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그것을 말해주잖아. 두 사람, 닥치고 커피를 시킨다. 어떤 커피를 마실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커피는 그저 거들 뿐. 둘 사이의 묘한 기운, 그것은 사랑이 막 꽃망울을 터뜨리려는 순간이야. 정성스레 내린 커피 한 잔씩을 놓는다. 향이 그들 주변을 감싼다. 문득 한 영화가 떠오르네. 

 

참 묘한 일이야 사랑은
좋아서 그립고 그리워서 외로워져
이게 다 무슨 일일까
내 맘이 내 맘이 아닌 걸
이제와 어떡해 모든 시간 모든 공간
내 주위엔 온통 너뿐인 것 같아 묘해
그래서 한 번 더 가보고 싶어져 너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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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라차차, 걸렸구나!’
그 영화를 보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아차’라는 낚싯줄에 걸린 고기를 놓쳤을 때의 아쉬움의 탄식이 아니라 ‘아싸’라는 고기를 제대로 낚았을 때의 손맛에 가까운 느낌. 주인아(손예진)가 말을 건넸다. “저희 집에서 커피 한 잔 하실래요?” 감히, 누가 따라가지 않을 재간이 있을쏜가. 설혹 그것이 지옥문을 여는 길임을 알고 있었다손, 그녀가 샤방샤방한 미소까지 품고 말하는데 버틸 재간이 없다. 오죽하면, 내가 스크린을 뚫고 그 집으로 들어가고 싶었을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네~ 주인아~씨, 하악하악. 

 

알다시피 영화는 <아내가 결혼했다>였어.
노덕훈(김주혁)이 부러웠어. 그건 은밀한 속삭임 정도가 아니었어. 아마도 거부할 수 없는 천사의 계시? 그것이 비록, ‘아.미.고(아름다운 미녀를 좋아하면 고생한다)’의 시작일지라도 멈출 순 없었을 거야. 알아도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는 불가해한 주술. 나는 사실 이 영화에서 다른 것보다 “커피 한잔 하실래요?”에 꽂혔어. (으응? 거짓말이지? 사실 손예진의 앙탈과 애교에 넘어갔으면서!!)

 

물론 이전에 비슷한 주술이 있었어.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된 은수(이영애 분)의 명대사, 알지? “라면 먹고 갈래요?” 캬~ 그때도 소주 한 잔 들고 은수가 사는 강릉까지 달려가고 싶더라. 상우(유지태) 입만 ‘입’이고 내 입은 ‘주둥이’냐, 라고 따지면서. 하하, 농담이야. 그때도 혹하긴 했지. 그래도 커피만큼 강력하지 않았어. 사람이 달라서가 아니야. 내가 라면보다 커피를 더 좋아하거든. 몇 년 전 CF에서는 조인성이 커피 한 잔 하자고 은근 졸라대더라. 그런데, 그건 ‘인스턴트’커피라서 전혀 안 당겼어. (에이, 남자가 권해서 그랬겠지. 여자들은 다 넘어가더니만!) “커피 한 잔 하실래요”가 왜 주술인지 더 말해볼까?

 

알프레도 토버의 <어느 의사의 고백>.
이 책에는 이런 얘기가 나와. 주인공 ‘나’는 의대생이자 의사야. 한때 환자였으며 풍만한 가슴과 쾌활한 걸음걸이로 자신의 육체적 매력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그녀를 길에서 우연히 만나. 부끄러워하는 내게 자신을 기억하냐며 그녀가 다가와 말하지. 어떻게 지내냐는 나의 물음에 그녀는 답해. “별일 없이 잘 지냈어요. 그런데 저, 혹시 커피 한 잔 안 하실래요? 저희 집이 이 근처인데요.” 허허, 대체 어쩌란 말이냐. 그러나 나는 매우 바쁘다며 손사래를 치고, 그녀는 “나는 당신이 좋아요”라는 말로 거듭 꼬드기지. 물론 이것은 책의 주내용과는 별 상관없는 얘기야(책의 부제는 ‘현대 의료 체계에 대한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고백록’이야. 의사철학자로서 의료관계자들이 처한 윤리적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성찰을 요구하는 책).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커피의 마성이야. 상대방에게 호감을 표시하거나 유혹할 때 커피, 님 좀 짱인 듯! 

 

원재훈의 소설 <모닝커피>에는 어떤 경고가 나오지.
마흔 줄의 심야방송 DJ가 주인공인데, 정신과 의사인 아내와 딸이 있지. 그는 ‘사랑을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무거움’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커피 한 잔’과 함께 ‘그녀’에게 허물어져. 그것이 커피 때문인지 그녀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그 순간이 퍽퍽함에 절어있던 그의 감성을 깨워. ‘하찮은 사물, 모든 것에 의미를 담아두던 스무 살의 버릇’이 막막 되살아나는 거야. 그리곤 사랑의 환상여행이 시작되는데, 저자는 이렇게 경고하는 것 같아. 남자는 “커피 한 잔 하실래요?”라는 (낯선) 여자의 말에 조심하세요! 유후~ 역시 교훈은 아.미.고.? (커피 권하는 여자들은 무슨 다들 팜므파탈이냐, 쯧)

 

어어, 오해는 하지 마.
남자, 여자의 문제가 아니고,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것이거든. 십 수년 전, 미국의 한 단체에서 1만 쌍의 부부를 대상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대. “맨 처음 두 사람을 로맨스에 빠지게 만든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앞에서 얘기한 것을 읽어왔다면, 대충 감이 오지? 맞아. 가장 많은 대답은 “우주 라이크 어 컵 오브 커피(Would you like a cup of coffee)?”였어. 그 말이, 즉 커피가 두 사람을 잇고 사랑하게 만든 매개가 된 거지. ‘커피 한 잔’의 위력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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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작은 역시 커피 한 잔.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 서연(수애)과 지형(김래원)의 관계를 다시 잇게 만든 마성의 묘약도 커피였어. 앞서 언급한 ‘어쿠스틱 콜라보’가 OST에 참여하고, 김혜자, 채시라, 도지원 주연의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도 이문학(손창민)은 휴가차 남해에 머물고 있는 김현정(도지원)에게 “만나서 이야기하시죠. 커피 한 잔 하실래요”라고 말하고 내려가서 커피 테이블을 준비해놓고 김현정을 기다리지. 그곳에서 커피는 또 마술을 발휘해. 도도한 김현정이 이문학에게 호감을 느낀 거지.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두 사람이 커피 한 잔씩 더 시켜서 나갔다.
아마 두 사람, 사랑이 본격 시작될 거야. 그 사랑의 지속가능성까지 커피가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 그 연애가 지속되는 한 두 사람이 가끔 <밤9시의 커피>의 문을 두드리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어. 커피 속에 그들의 사랑이 있으니까. 부디, 저 두 사람 충분히 사랑하면서 연애하길. 연애를 하는 순간 순간을 최대한 누리는 것이 연애의 엑기스이니만큼 그들이 다시 온다면 커피도 엑기스를 뽑아줘야겠다. 두근두근 설렘 같은 커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긴장감으로 감싼 커피, 사랑하고 있다는 충족감과 사랑받고 있다는 포만감으로 버무린 커피, 때로는 뜻대로 안될 때의 탄식 같은 커피, 섹스 하는 격동을 담은 커피.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그 모든 상태를 오감으로 즐기도록 커피를 내리는 것. 

자, 사랑이 누구나의 인생에 끼어드는 위험임에도 그것을 무릅쓸 가치가 있다면, 커피는 그 위험에 불을 붙이는 뇌관이다. 그러므로 그 커피는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할 것이다.

글 | 낭만(김이준수)
낭만 님은 사회적금융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커피스토리텔러입니다. ‘스스로 걷는 사람’으로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계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멋대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말을 현실화하고자 천천히 걷고 있습니다.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을 썼고, 《그림자아이가 울고 있다》의 스토리텔링을 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