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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人2019.11 | Vol.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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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카페 2019.11 | Vol.3
월간 카페人  /  제3호  /  커피 볶는 마을
커피 볶는 마을
커피향미를 찾아서 3

누구도 빼앗지 못하는 관능적 행복

커피를 마실 때 향미를 음미하고 평가하는 것은 자신의 행복을 위한 일이다. 커피 향미가 불러일으키는 관능적 행복은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오로지 나만의 행복이다. 지금 커피를 마주하고 있다면, 커피에 주목하라. 단지 누군가의 대화를 위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향기로 말하고 있는 커피에 집중하자.

덩그러니 한 잔에 담긴 커피는 단지 사물이다. 그러나 그것은 목을 넘어 오는 순간, 나를 지배하는 정서가 된다. 커피의 향미는 내가 실존하고 있음을 일깨워 주는 구체적인 느낌이다. 한 편의 시를 읽을 때 피어나는 감성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커피는 향기가 감성이 돼 그렇게 한다.

세계 3대 커피로 꼽히는 하와이안 코나 엑스트라팬시 등급의 커피 열매가 탐스럽게 열려 있다.
세계 3대 커피로 꼽히는 하와이안 코나 엑스트라팬시 등급의 커피 열매가 탐스럽게 열려 있다.

제3의 물결, 스페셜티 커피

커피를 문화적 도구로서 대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에 달하는 커피의 긴 역사에서 최근에야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향미로서의 커피가 언제부터 소중해졌는지는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의 기원을 찾아가면 만날 수 있다.

커피애호가들 사이에서 적잖게 ‘제3의 물결’이라는 말이 오간다. 앨빈 토플러가 농경생활, 산업혁명에 이어 과학기술에 의한 인류문명의 대변혁을 지칭한 용어인데, 커피전문가들이 이 표현을 빌려왔다. 1950년대 인스턴트커피의 확산, 1970년대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의 유행에 이어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거세게 불기 시작한 ‘스페셜티 커피의 열풍’을 빗댄 말이다.

스페셜티 커피란 한마디로 ‘와인처럼 향미를 즐기고 테루아(terroir)를 감상하는 커피’이다. 테루아는 포도를 재배하는 토양, 강수량, 일조량, 바람 등 자연조건뿐 아니라 재배기술의 전통과 재배자의 열정까지 와인을 특별하게 만든 모든 요인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스페셜티 커피의 자격은 이토록 엄격한 테루아 와인의 기준에 착안해 품종, 산지, 재배자 등 출처를 분명히 밝히는 데서 얻게 된다. 한 잔에 담긴 커피가 제법 근사하더라도 품종이 무엇이며 자란 곳은 어디인지, 또 가공방법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를 알 수 없다면 그것은 ‘특별’할 수 없다. 스페셜티 커피가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은 단지 향미가 좋기 때문만이 아니다.

스페셜티 커피는 우선 산지가 명확해야 하며, 커피나무가 자란 땅과 재배자까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에서부터 자격을 얻게 된다
스페셜티 커피는 우선 산지가 명확해야 하며, 커피나무가 자란 땅과 재배자까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에서부터 자격을 얻게 된다.

예를 들어,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커피문화경관; Coffee Cultural Landscape)으로 지정한 콜롬비아 킨디오주의 에스메랄다(La Esmeralda) 농장에서 2016년 11월에 수확해 수세식으로 가공한 카스티조(Castillo) 품종의 커피라면 그것은 일단 스페셜티 커피로 논할 자격을 가진다. 어디서 왔는지 명확하고 테루아가 다른 커피들이 일절 섞이지 않은 이른바 ‘마이크로 롯(Micro Lot)’이기 때문이다.
이 커피가 콜롬비아에서 열린 국제커피품평회 ‘킨디오커넥션(Quindio Connection) 2016’에서 우승을 했다는 사연은 더욱 애정을 갖게 만든다. 여기에 복숭아-살구꽃 향과 멜론처럼 부드러움을 떠올리게 하는 단맛, 패션프루츠처럼 기분을 경쾌하게 만드는 산미는 ‘킨디오 커피’를 뇌리에 사무치도록 한다.

“우리는 관능적으로 진화에 성공한 테이스터”

스페셜티 커피를 마시는 것은 품성이 좋은 사람을 마주할 때 밀려 드는 행복감을 닮았다. 그가 자라온 환경, 어떤 계기와 과정이 훌륭한 인격체로 만들었는지를 알고 싶게 한다. 사소한 것이라도 그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알고 싶게 되고, 어느새 자주 그를 말하게 된다.

살아가면서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자연스레 키워지는 것처럼 스페셜티 커피를 구별하는 능력은 경험에서 쌓여진다. 더욱이 관능이라는 것은 오랜 세월 진화과정에서 DNA에 기록되는 능력인 만큼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 쓴맛을 구별할지 모르는 인류는 독을 섭취할 위험성이 크므로 서서히 도태됐고, 신맛을 구별 못하는 인류 역시 상한 음식을 자주 먹게 됨에 따라 지구상에서 사라져갔다. 지금의 우리는, 그러므로 관능적으로 진화에 성공한 우수한 테이스터(Taster)들이다.

인간은 유익한 것을 먹을 때는 좋은 기분이 들도록 진화했다. 꿀이 달게 느껴지는 것은 에너지원이 되는 요긴한 물질이기 때문이다. 쓴맛을 꾹꾹 참으며 먹는 동물은 인간뿐이라고 한다. 우리가 씀바귀를 즐겨 먹을 수 있는 것은 입맛이 돌게 하고 몸에 해롭지도 않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우친 까닭이다. 토끼가 씀바귀를 즐기는 것은 이와 다르다. 토끼에게 씀바귀는 쓰지 않고 관능적으로 유쾌함을 주는 맛을 낸다.

커피 향미는 정답이 있다

스페셜티 커피를 구별하기 위해선 두 단계의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맛을 보고 좋은 커피인지 나쁜 커피인지를 가려낼 줄 알아야 한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맛이 다르기 때문에 커피의 향미란 정답이 없다”는 말이 언뜻 맞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나쁜 커피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첫인상에서 향기가 좋고 단맛이 감도는 듯하다고 해서 섣부르게 ‘괜찮은데’ 하고 단정해선 안 된다. 좋다고 일단 받아들이면, 우리의 관능은 설령 불쾌함이 느껴지더라도 너그럽게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쪽으로 작동한다.

나쁜 커피를 구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건강에 해롭기 때문이다. 잘 익은 커피체리만을 골라내지 않고 함부로 수확한 커피는 제 맛을 내지 못한다. 덜 익은 열매에서 나온 씨앗에서 비롯되는 쓰고 떫은맛이 잘 여문 씨앗의 멋진 향기, 과일 같은 유쾌한 신맛과 단맛을 덮어 버린다. 더욱이 벌레 먹거나 가공-보관 과정에서 곰팡이가 핀 콩이 섞여 있다면 끔찍하다. 곰팡이의 독소가 로스팅 과정에서 사라진다고 하지만 불쾌한 맛은 여지없이 남아 관능을 괴롭힌다.

좋은 사람인지 부족한 사람인지는 헤어진 후에 더 잘 드러난다. 만나고픈 그리움을 남기는지, 찜찜함이 이내 가시지 않는지…. 좋은 커피도 이와 같다. 정성들여 키우고 솎아내 한 잔에 담아낸 커피는 목을 넘긴 뒤에 입안을 촉촉하게 만든다. 뇌가 논리적으로 판단해 더 섭취해도 좋다고 판단하기 전에 자율신경이 더 섭취하라는 사인으로 침을 분비하게 만드는 것이다. 좋은 커피는 이처럼 몸이 먼저 알아챈다.

반면, 나쁜 커피는 입에 들어오는 순간에 기대되는 ‘일깨움’이 없다. 발랄한 산미로 경쾌함을 주거나 단맛으로 지친 영혼을 감미롭게 매만져주는 관능적 신선함을 찾기 힘들다. 고독처럼 쓴 자극만을 외칠 뿐이다. 입에 담을 때부터 닿는 부위를 마치 작정하고 찔러 대는 듯하다.

이 때 신맛과 신향이 난다고 해서 스페셜티 커피라고 주장한다면, 차분히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신맛이라는 것이 단지 ‘시큼하다’는 표현을 반사적으로 튀어나오게 하는 자극인지, 과일을 연상케 하는 기분 좋은 산미인지 따져봐야 한다. 멜론이나 망고처럼 단맛이 먼저 다가왔다가 후미에서 산미가 살아나 지루함을 떨쳐내는지, 아니면 잘 익은 파인애플이나 한라봉처럼 옥타브 높은 산미가 쇄도했다가 단맛이 나타나 산미를 보듬으며 관능에 살살 스며들게 하는지를 체크하면 마시는 즐거움이 배가 된다.

콜롬비아 킨디오에서 허니프로세싱 방식으로 건조한 파치먼트
출처가 명확한 스페셜티 커피라고 해도 가공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향미가 떨어진다. 그 순간 그 커피는 스페셜티 커피에서 제외된다. 사진은 콜롬비아 킨디오에서 허니프로세싱 방식으로 건조한 파치먼트.

향미를 묘사하는 방법

나쁜 커피를 가려낸 뒤 두 번째 단계는 커피의 면모를 표현하는 자질을 기르는 것이다. 향미를 묘사할 때는 철저히 주관을 배제해야 한다. 사람마다 기호가 다르고, 각자 ‘좋아하는 커피’를 ‘좋은 커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SCAA(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 기술위원이자 커피테이스터 교육프로그램의 창안자인 션 스테이먼(Shawn steiman) 박사는 “커피테이스터는 감정을 느끼지 않고 서술하는 기계에 가까운 사람이다. 주관적 견해를 덧붙이지 않고 순수하게 커피가 어떤 지를 평가하고 묘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커피의 향미를 묘사한다는 것은 그 커피를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맛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그 면모를 알리기 위한 것이다. 결국 소통을 위한 장치인 셈이다. 따라서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원칙이 있다. SCAA, COE(Cup of Excellence), 케네스 데이비즈(Kenneth Davids)의 100포인트, 션 스테이먼의 테이스팅 포인트 등 커피의 향미를 평가하는 시스템들은 기본적으로 공통되는 측정항목이 있다. 아로마(Aroma), 산미(Acidity), 바디(Body), 플레이버(Flavor), 여운(Aftertaste) 등 5가지 지표에 따라 커피 향미의 정체성을 표현하면 객관적인 소통이 가능해진다.

커피

“커피 맛이 어때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차례로 이들 지표에 각각 해당하는 단어 한두 가지를 표현하면 된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아로마는 복숭아를 떠올리게 하는 단향과 함께 하늘하늘 꽃 향이 정겹습니다. 산미는 말랑말랑하게 잘 익은 살구나 백도를 한 입 베어 문 것처럼 자극적이지 않고 따스한 느낌으로 길게 이어집니다. 바디는 꿀이나 잼처럼 끈적인다는 느낌을 줄 만큼 존재감이 있고, 그 부드러움은 벨벳이 볼에 닿는 듯 매끄럽습니다. 플레이버는 핵과류 과일, 버터향이 그윽한 크루아상, 바닐라의 복합미가 어우러지면서 입 안 가득 풍성함을 자아냅니다. 여운은 신맛과 단맛이 서로 압도하려하지 않고 엎치락뒤치락 길게 이어지면서 후미에서는 밀크초콜릿의 부드러운 쓴맛이 혀를 계속 문지르고 있는 듯합니다.”

명심할 것은 커피의 향미를 멋지게 표현한다고 느껴지지 않는 면모를 지어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맛을 지어내기 시작하면 커피 향미의 실체를 영원히 만날 수 없다.

글 | 박영순
사진 | 커피비평가협회(CCA, www.ccacoffee.co.kr)
박영순 님은 21년간 신문기자로서 와인, 위스키, 사케, 차, 맥주, 커피 등 식음료를 취재하면서 향미에 몰입했습니다. 미국,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에서 향미 관련한 자격증 30여종을 비롯해 미국요리대학(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서 플레이버 마스터를 취득한 뒤 인스트럭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과 경민대 호텔외식조리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년 <커피인문학>을 출간했습니다.